1. 앞으로 출간된 시집을 포함하여 총 다섯 권의 시집을 출간(혹은 예정)하셨는데요. 이 시집들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우선 암 투병이라는 어둠의 시간이 없었다면 이 시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문학에 천학비재한 내가 어찌 시를 쓰겠다고 엄두를 냈겠는가? 생각도 못 할 일이다. 이 시도 쓰려고 쓴 게 아니다. 그냥 쓰인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행, 뼈암과 위암, 두 개의 암 수술을 받고 난 뒤부터 남아도는 건 시간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순간순간 소용돌이치는 내 감정을 기록하는 일뿐이었다. 수술 후 완치판정을 받을 때까지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장에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나의 넋두리, 이것이 모여 5권의 시집이 되었다. 이 시집은 시인의 시집이라기보다는 한 암 환자의 암 극복 일기장이라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시를 쓸 때 주로 어디(혹은 무엇)에서 소재를 찾는지 궁금합니다.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요?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시를 써야 하겠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쓴 것이 아니기에 ‘무엇을 시로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직 그날그날 ‘내 눈에 보이는 것’, ‘내 귀에 들리는 것’을 죽음을 앞둔 암 환자의 절박한 심정과 연계시킨 것에 불과하다. 결국, 그 날의 기분 및 감정을 시적 형식을 빌려 내 병의 회복을 기원하는 비나리로 쓴 것이다. 되돌아보면, 내 시집의 소재는 새벽에 산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서부터 빗소리, 바람 소리, 새 우는 소리, 까치소리 등 내 농막 주위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삶이다. 결국, ‘자연과 삶과 죽음’이 내 시의 소재였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내 시집에는 삶과 죽음, 어둠과 밝음, 기다림과 희망에 관한 내용이 가장 많다. 가장 애착이 가는 시 작품으로는 「그날이 올 때까지는」(제1집), 「솔방울의 꿈」(제2집), 「울지 않는 종은 울고 싶다」(제3집), 「폐선, 그 길 위에 서다」(제5집) 등이다. 그 이유는 그 시를 쓸 때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절망과 간절함이 지금도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흔히 시는 고통에서 나온다고 하는 데 직접 그 고통을 경험했으니 오죽하겠는가? 나의 시는 문학적 해석과는 별개의 언어다. 그냥 내 영혼과의 대화이다.
3. 현재 투병 중인 환자들과 고통을 나누기 위해 시집을 집필하였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외에도 이 책을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그렇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말이 있지요.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그 불치의 병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을 때 느끼는 절망감, 암 병동의 음울한 분위기, 지금도 그 그늘 속에서 ‘어둠의 길’을 가고 있는 암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었다. 암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육체의 고통이라기보다는 수시로 찾아오는 삶의 상실감과 우울증이다. 끝없이 찾아오는 감정의 기복, 마음의 안정을 잃으면 삶에 대한 의지도 무너진다. 나는 이미 그 길을 걸어왔다. 따라서 그 길에서 읊었던 나의 넋두리, 나의 비나리를 그냥 묻어 둘 것이 아니라 진솔하게 그들에게 들려주어 나와 같은 희망을 품으라고 전하고 싶었다. 끝으로 암 환자를 둔 가족들에게 말하고 싶다. 가족들의 사랑이야말로 암 환자의 양생에 가장 큰 힘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암 환자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해야 한다. 이 시집이 환자의 심정과 심리적 상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단언컨대 암 환자로 하여금 세속의 삶과 투쟁하지 않게 하고,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암 극복의 일등공신이다.
4.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울지 않는 종은 울고 싶다’는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갈비뼈에 붙어 있는 뼈암을 떼어 내고 위를 3/4 잘라 내고, 결국 내 몸은 깨어진 종이었다. 깨어지기만 했겠는가. 눈물샘까지 말라버려 때려도 울지 않고, 흔들어도 울지 않는다. 살아 있되 죽은 종과 같이…… 공이가 빠져나간 종이었다. 결국, 나는 울지 않는 종이다. 울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듯, 울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살아 있는데, 죽은 것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종은 울어야 종이다. 울지 않는 종은 종이 아니다. 울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온전한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울고 싶다. 죽은 사람이 아닌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누가 나를 온전한 종으로 만들어다오. 이 얼마나 간절한 심정인가? 나는 살고 싶다는 강렬한 메타포가 아닐까?
5. 시집을 다섯 권 출간하셨는데요. 또 다른 책의 출간 계획이 있으신지, 혹은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함께 말씀해 주세요.
출판 후 활자화된 시를 다시 읽어 보니 인제야 내 시가 보인다.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무엇보다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 독자가 해석할 여지와 공간을 남기지 못해 떨림이 없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그냥 밋밋한 일기장이다. 부끄럽다. 그렇지만 책장 속에 처박힌 일기장보다는 가끔 꺼내 읽어 볼 수 있다는 것에 위로를 삼는다. 지난 5년 동안 본의 아니게 시 공부를 했다. 이제 남은 시간 제대로 된 완치 이후의 암 환자의 삶을 노래하고 싶다. 때가 오면 다시 좋은땅을 찾을지도 모른다. 내 농막은 언제나 좋은땅이다. 메뚜기와 홍구래비가 뛰어놀고 까치와 동박새가 노래하는 곳, 오염되지 않은 땅이다. 좋은땅에서는 항상 좋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끝으로 지금도 앞이 보이지 않는 ‘길 없는 길’, ‘어둠의 길’을 가고 있는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삶과 투쟁하지 말고 삶의 신비를 즐기라고 전하고 싶다. 자신의 영혼과 대화하라고 전하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 밝음이 찾아올 것이라고 전하고 싶다. 어둠이 지나면 반드시 새벽은 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