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 있음. 더블린1 썸머힐,
월세 250유로, 보증금 265유로
회색 빛의 하늘 아래에 서 있자니, 그 어떤 쓸쓸함이 느껴졌다. 조금 더 걸어가니, 아일랜드 작가인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의 집을 연상시키는, 낡은 잿빛 테라스 하우스가 보였다.
‘580번’
손에 들린 종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끼익-’
문을 여니 복도에 음산한 분위기가 돌고 있었다. 카펫에서 퀴퀴한 냄새가 올라와 집안에 진동하고 있었다. 문 앞에 걸려 있는 숫자만이 말없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주황 불빛에 먼지들이 부옇게 떠다녔다. 한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만나서 반가워요. 조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나를 방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방은 단출한 가구로 채운, 아주 황량하고 아주 우울한, 회색의 방이었다. 조이가 내게 열쇠를 주고 돌아가자, 방을 채운 공기는 납덩이같이 적막하고 고요해졌다. 창문 밖에 몇 대의 자동차가 지나가더니 벽에 비친 그림자가 으스스한 유령처럼 움직였다.
한국에서의 삶이 전부였던 내게, 외로움과 두려움, 암담한 비애, 그 어떠한 정체성과 소속감을 잃은 상실감 그보다 더 큰 절망이 있을까? 어스름 밤이 찾아올 때면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국을 향해 펑펑 울었다. 넘어가는 석양 아래로 새들도 꺼억꺼억하며 나와 함께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톡톡 치고 있었다. 조이였다. 눈물을 닦으며 일어서는 내 모습에 그녀가 당황스러운 듯이 말했다.
아임 데프(I’m Deaf).
“오, 미안해요.”
조이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듯이 당황해하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 익숙했다.
“전혀 몰랐어요. 다시 돌아오죠.”
그동안 청인들 안에서 겪어온 기억들을 떠올리며 혹시 쫓겨나는 것이 아닐까 맥없이 불안해졌다.
우리 집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작은 종이 위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필기체였다. 조이의 글로 인해 내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의 파장이 퍼져갔다. 그녀가 나를 한 인격체로서 온전히 받아 주고 있음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 후로 조이는 내가 어떤 모습이든 진지하게 반응했고, 공감했고, 감싸 안아 주었다. 사실 큰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공감들, 자신의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 쪽지 위의 진실된 글 하나가 내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된 장애인의 날입니다. 따뜻한 봄날에 장애인도 야외활동하기 좋은 날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법정 공휴일이 아니었다가, 장애인복지법이 명기되면서 법정 기념일로 정해졌습니다.
에세이 <고요 속의 대화>는 글에 대한 열망으로 아일랜드로 떠난 작가의 자전적 체험이 담겨 있습니다. 거친 세상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가고픈 이들에게 진정 어린 메시지를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