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낯선 좋은땅으로 떠난 저의 첫 원고가 80일 만에 제 손 안에 책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볼품없는 낱장 뭉치가 잘 포장된 완성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마치 좋은 땅에 씨앗을 뿌렸는데 잘 자라 탐스러운 열매를 수확한 듯합니다.
터를 제공해준 좋은땅 출판사와 담당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도착한 책을 처음 보는 순간 무엇이든 '첫'이 그러하듯 신기했습니다.
마치 갓 출산한 첫 아이를 보듯 제 책이 그러했습니다.
자기애와 소유욕 강한 인간이기에 제가 쓴 책은 타인이 쓴 책과는 다르게 느껴지나 봅니다.
살아생전 처음 경험하는 오묘하고 신선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계획에 없던 결과물입니다.
평생 광고만 하던 제가 책을 쓰다니요?
더구나 광고 문안을 작성하는 카피라이터도 아니고 광고 기획만 하던 사람이 말입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가져다 준 역설적인 여유가 저로 하여금 여기까지 오게 하였습니다.
지난 1년간 일량이 줄은 낮 시간과, 사라진 저녁 약속들이 만들어준 밤 시간으로 인해 저는 이전보다 여유로워졌으니까요.
타인과의 언택트 시대에 저는 그간 소홀했던 저와의 컨택트를 강화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상하좌우로 보인다고 하는 50 지명이 넘어서부터 틈틈이 써놓은 글들은 있었습니다.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남에 따라 그렇게 한 것입니다.
손 글씨는 악필이라 모양도 안 예쁘고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래 못 쓰지만,
자판 글씨는 그런 장애가 없어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그렇게 모아진 글들과 작년에 뜻하지 않은 코로나 타임에 쓰게 된 글들이 늘어나면서 이 정도면 책까지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운이 발동했습니다.
"그래, 그럼 내 인생에 책 한 권 내보자"라는 번개성 버킷 리스트가 급 추가되면서 이렇게 제 책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세상사 인간사 이때저때 이곳저곳 이것저것, 그리고 이사람저사람에 대해 관심 많은 저자의 에세이집입니다.
관심이 많은 만큼 오지랖 넓게 이야기를 펼쳐 놓았지만 수박 겉 핥기 식의 얕은 깊이로 인해 정작 음미하고픈 메인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50대에 쓴 저의 지나온 인생 기행문 성격이라 제목을 '지명에서 이순으로의 기행'이라 하였습니다.
정하고 보니 책의 정체성이 불분명해보여 '어느 광고인의 광고 아닌 인문교양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광고의 대가 데이비드 오길비의 명저 '어느 광고인의 고백'을 패러디한 부제입니다.
아직 책장을 넘기지는 않았습니다.
이제 제 책을 처음 읽게 되는 첫 경험도 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제가 저를 훔쳐보는 행위인지라 부끄럽고 남세스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 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이런 느낌은 더 크게 오는 듯합니다.
무명 졸필의 졸작이기에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