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중심적인 사고
90년대생을 이해하기 위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나’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중심적이다.’ ‘이기적이다.’ ‘버릇이 없다.’라는 소리를 많이 듣기도 한다. 얼마 전 국민일보에 90년대생의 당돌함 때문에 난감했던 한 중소기업 임원의 사연이 소개됐다.
중소기업 임원은 “면접을 봤습니다. 이런 분수를 모르는 청년은 처음이네요.”라는 제목으로 한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다. 임원이 입사하면 하게 될 일에 대해 설명하자 청년은 “이거 단순노동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매우 정밀하고도 중요한 작업을 단순노동으로 여기는 태도에 순간 ‘욱’했지만 면접을 이어 갔다.
청년이 “남들이 제가 군대에서 따 온 폭발물질관리 및 안전관리 자격증이 있으면 입사해서 연봉 3500만~360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한다.”라고 했고 임원은 “우리 회사는 폭발물이나 위험물질을 취급하지 않고, 안전관리 자격증은 기술업무에 꼭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업무활용에 반영될 수 있도록 참고는 하겠다.”라고 했다. “저 정도면 다른 큰 비철 제조업체의 연구팀이나 품질팀에 근무하면서 3500만 원 이상은 받을 수 있습니다. 상무님은 저 얼마까지 맞춰 주실 수 있으신가요?” 청년의 질문에 임원은 당황스러웠다. “연봉 3500만 원은 석사학위 소유자 이상이 받을 수 있는 수준입니다.” “여기는 저와 페이가 안 맞네요. 가겠습니다.”
임원은 그렇게 인사도 없이 떠나는 청년을 보고 ‘회사 직원들과 함께 쌓아 온 모든 것이 부정되고 무시당한 느낌’이라고 했다. 이 글은 삽시간에 화제를 모았고 네티즌들은 갑론을박을 벌였다. 사람들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안다.” “항상 자기들이 받을 것만 물어보지 해 줄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일찍부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 등등 면접자의 태도를 지적했다. 한편 젊은 세대들의 입장에서는 “초봉이 너무 약했다.” “당연한 주장이다.”라며 그의 생각이 존중받기를 원하고 있었다. 둘 중 누가 옳은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20년간 직원을 채용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겪어 봤다.”라는 임원의 말처럼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90년대생의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내 자녀의 ‘자아존중감’이었다. 자아존중감이란 자기 자신이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이며 유능하다고 믿는 긍정적인 마음이다. 이들의 부모들은 양육 방식에 있어 서구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세대다. 1970~1990년대의 북미권 가정에서는 ‘아이의 자존감 키워 주기’가 핫이슈였다. 그렇게 불기 시작한 바람은 1990년대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여성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육아 지침서가 출간되었고 육아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오기 시작했으며 모두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 주라고 충고했다.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칭찬을 받고 자란 90년대생의 자부심은 과도하게 커졌다.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국의 아스펜 교육단체는 이를 ‘고삐 풀린 칭찬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칭찬의 인플레이션이 기성세대를 민망하게 하고 있다.
긍정적 피드백과 부정적 피드백을 균형 있게 듣고 자란 사람은 정확하게 자신을 평가할 수 있다. 어떤 일에 대해서 결정을 내릴 때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반면 긍정적 피드백만 받고 자란 사람들은 부정적 피드백을 받으면 쉽게 충격을 받는다.
그들은 질책에 익숙하지가 않다. 상사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라며 부정당한 느낌을 수용하지 못한다. 특히 내가 원하지 않은 사람에게 듣는 충고나 조언은 불필요한 간섭이라 여기고 불쾌하게 생각한다. 질책을 담당하는 상사들도 골치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관리자급들 사이에서는 괜히 어린 직원을 야단 쳤다가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싫은 소리는 그냥 넘어가고 싶다고 한다. 이젠 회사에서 상사에게 꾸중 듣는 법과 부하 직원을 질책하는 기술 모두를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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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당당할 것 같은 이들의 자존감도 어려운 현실 앞에서는 불안하게 흔들린다. 최근 우리 사회에 자존감 개발 열풍이 불고 있다.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는 출간 이후 최장기 베스트셀러 기록을 세웠다. 그 후로 지금까지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단행본이 수십 종 출간됐다. 그중 윤홍균의 《자존감 수업》은 출간 1년 1개월 만에 50만 부라는 판매를 기록했다.
청년들 사이에서 자존감 개발 열풍이 분다는 것은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자존감이 흔들린다는 방증이다. 아르바이트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이 20대 616명을 대상으로 자존감 실태 조사를 했다. 전체 응답자 중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고 대답한 사람은 40%에 달했다. ‘나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으로 1위는 행복해 보이는 지인의 SNS를 볼 때, 2위는 취업이 안 될 때, 3위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를 꼽았다.
전문가들은 20대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은 시대와 사회적 요인이 크다고 분석한다. 경제의 저성장 기조 역시 무관하지 않다. 불경기로 인한 취업 압박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의 자존감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취업 후 처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대인 관계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는 이들의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위계와 역할이 분명한 우리 사회 구조에서 자기 존중의 욕구를 주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90년대생은 회사에서 언제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까? 주로 일방적인 업무 지시, 불필요한 간섭 등 수직적인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불쾌감을 느낀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최근 많은 조직에서 시도하는 것이 호칭이나 직급 체계의 변화다. 대표와 임직원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그들은 개인적인 취향이나 성향에 대한 비판을 받을 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90년대생들은 획일화된 규칙을 따르기보다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 90년대생들이라고 모두 예의가 없거나 자기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요즘 젊은 것들은 이렇다.’라는 일반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다양성과 개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취향과 생각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처럼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바뀔 수는 없다. 변화를 위한 작은 노력이 조직 문화의 개선을 이룬다.